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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구만

이미지없음
 남구만(南九萬)

<생거> 남구만은 조선후기의 문신으로 조선조 개국공신인 남재(南
在)의 후손인 현령(縣令) 일성(一星)의 아들로 태어났다. 본관은 의
령(宜寧) 자는 운로(雲露) 호는 약천(藥泉)・미재(美齋) 시호는 문
충공(文忠公)이다. 동춘당(同春堂) 송준길(宋浚吉)의 문하에는 글
을 배웠으며, 23세 되던 해인 1651년(효종 2년)에 진사시에 합격하
였고, 1656년에는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가주서・전적・사
서・문학을 거쳐 다음해인 1657년에 정언이 되었다.
1659년에는 홍문록에 오르고 이어 교리에 임명되었다. 32세 되던 해
인 1660년(현종 1년) 이에 이조정랑이 되었고, 이어 집의・응교・사
인・승지・대사간・이조참의・대사성을 거쳐 1668년에는 안변부사
와 전라도 관찰사를 역임하였고 1674년에는 함경도관찰사로서 유학
(儒學)을 크게 보급 발전시키는 한편 북쪽 변경의 수비를 견고히 하
는 등 수많은 치적을 남겼다. 1679년(숙종 5년)에 좌윤이 되었고 이
해에 윤휴(尹鑴), 허견(許堅)등의 방자함을 탄핵하다 남해(南海)로 
유배되었다. 이듬해인 1680년(숙종 6년) 이른바 『삼복(三福)의 옥
(獄)』으로 남인이 서인에 의해 축출되자 도승지・부제학・대사간 
등을 역임하고 이어 대제학의 자리에 올랐다. 1683년 병조판서가 되
어 폐한 북방의 4군(四郡)을 다시 설치할 것을 주장해 무창(茂昌), 
자성(慈城)의 어지러움을 지적해 개선하였다. 이해 4월부터 서인이 
노론과 소론으로 분열되자 소론의 편에 섰다. 이후 관직 상 가장 우
위에 있던 남구만은 소론의 영도자가 되어 송시열 등의 노론에 대항
하였다. 이러한 가운데 계속 승진하여 1684년 우의정, 1685년 좌의
정, 1687년에는 영의정에 올랐다. 1689년(숙종 15) 희빈(禧嬪) 장
(張)씨의 소생 세자책봉문제로인해 기사환국(己巳換局)이 일어나
자 남인이 득세하면서 강릉으로 유배되었다. 이듬해 유배에서 풀려
나고 이후 1694년(숙종 20)에는 소론을 탄핵하려던 남인 출신의 우
의정 민암(閔黯)이 숙종의 미움을 사 사사(賜死)되고 남인이 실각하
는 갑술옥사(甲戌獄事)로 다시 영의정에 복귀하고, 1696년 영중추
부사가 되었다. 이로 남구만이 이끄는 소론이 관직의 상부에 포열
(布列)하여 노론에 맞설 굳건한 기틀을 마련하게 되었다.
1701년(숙종 27) 장희빈의 처벌문제에 대하여 노론의 김춘택(金春
澤), 항중혁(韓重爀) 등이 중형(重刑)을 주장하자 이에 맞서 경형
(輕刑)을 주장하다가 숙종 스스로 장희빈의 사사(賜死)를 결정하자 
사직하고 낙향하였다.
그 뒤 여러 차례 사직・유배 등 파란을 겪다가 서용(敍用)되었으나 
1707년(숙종 33) 관직에서 물러나 봉조하(奉朝賀)가 되었다. 1711년
(숙종 37)에 82세를 일기로 세상을 마치자 숙종은 문충공(文忠公)이
라는 시호를 내리고 종묘에 배향케 했으며 강릉의 신석서원(申石書
院), 종성의 종산서원(鐘山書院), 무산의 향사(鄕祠)에 배향되었다.
남구만은 당시 정치의 중심인물로 정치・경제・행정・군정・인재등
용・의례 등 국정전반에 걸쳐 경륜을 펼쳤을 뿐만 아니라 문사(文
詞)와 서화(書畵)에도 뛰어나 책문(冊文)・반교문(頒敎文)・묘지명
(墓地名) 등을 많이 썼으며, 청구영언에 전해오는 시조 <동창이 밝
았느냐>는 널리 인구에 회자되고 있는 작품이다.

“동창이 밝았느냐 노고 지리 우지진다
소치는 아 해는 상기 아니 일었느냐
재 넘어 사래 긴 밭 언제 갈려 하느니“

당시 당쟁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이와 같은 목가적인 작품을 지을 
수 있었던 것을 보면 문학적 자질이 뛰어났음을 알 수 있다. 저서로
는 <약천집(藥泉集)>과 <주역참동계주(周易參同契註)>가 전하고 
있으며, 글씨로는 남지(南智)의 비(碑)와 찬성장현광비(贊成張顯光
碑)가 남아있고, 액자로는 개심사(開心寺), 양화루(兩花樓), 영송루
(迎送樓) 등이 있다. 그의 묘소는 현재 모현면 갈담리에 있고, 후손
의 집안에 영정 2점이 전해져 오고 있으며, 사당 또한 있다.

<참고문헌: 肅宗實錄, 朝鮮金石總覽, 내고장의 얼>, 최희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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